얼마 전 학교에서 수행평가 공고가 있었다. 세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는 것인데, 그 중 한 권이 이 '여덟단어'였다. 나는 수행평가라는 딱딱한 틀에 얽매여 또 형식적인 글을 써야 할 테고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한 내용의 책이 제시되어 있는 줄 알고 책을 펼쳤다. 책의 목차는 조금 독특했다. 문장이 아닌 추상적인 단어로 자존, 본질, 고전과 같이 한 단어씩 툭 제시되어있었다. 나는 책의 본 내용을 읽기 전에 챕터의 이름만을 보고 어떤 내용일지 짐작해보았다. 자존이라는 단어에서는 자아존중감과 자기 자신을 아끼는 법, 본질에서는 인생의 본질을 찾아가는 법, 고전에서는 가치를 잃지 않고 영겁의 세월을 거쳐 온 예술품과 그 이해. 어떤 내용이 나올지 짐작을 하기 시작하자 따분해보이던 책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내가 추측한 내용이 이 책의 저자의 생각과 일치했을지, 이면적인 이유로는 저 내용들이 정말이라면 익혀 두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대감에 가득찬 채로 다음 장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br>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예상한 것과 유사했다. 자존에서는 자기 자신의 길을 걷는 법, 본질에서는 핵심을 파악하고 달려나가는 법, 고전에서는 고전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법, 견에서는 깊이 들여다보고 음미하는 법, 현재에서는 순간순간을 가치있게 살아가는 법, 권위에서는 불합리한 권위를 이겨내는 법, 소통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언어로 움직이는 법, 마지막으로 인생에서는 삶의 정답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작가는 나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자존'이었다. 자존감은 사람의 마음에서 큰 역할을 한다. 약한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주는, 식물세포에 비유하자면 핵을 보호하는 세포벽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존재이다. 자존이라는 단어의 직관적인 의미는 '나를 중히 여기는 것'이다. 작가는 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나는 저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자존이라는 것은 모든 방어기제의 뿌리이자 마음의 면역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두 가지 명언을 제시한다.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인데, 각각 '죽음을 기억하라'와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뜻이다. 두 구문은 상반된 의미같지만 결론적으로는 같은 의미를 지향한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처한 운명을 사랑하라'와 같이 이어지게 된다. 자존의 강도와 유무는 기준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단순하게 접근해서 기준점이 내 안에 있으면 자존을 행하고 있는 것인 반면, 외부에 기준점이 있다면 자존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기준점을 대한민국 사회의 영향으로 밖에 찍게 되었지만 안으로 하나씩 옮겨 들여오면 그 점이 이어져 별이 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Be Yourself'라는 말을 하며 단원을 마무리하는데, 이것은 기준점을 자신에게 찍으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br> 내가 자존이라는 단원을 가장 인상깊게 읽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고 실천이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기준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그 어려운 비유와 실행을 쉽게 옮긴다. 단순히 기준점을 밖에서 안으로 옮기는 것. 이것이 실제로 자존의 시작이자 끝이다. 나는 이 책, 이 단원을 읽고 '기준점의 이동'이라는 말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그동안 자존감에 관련된 논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자존감에 관련된 가장 정확하고 멋있는 비유와 실천법은 무엇일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왔는데, 기준점이라는 말 하나로 내 고민들을 종결시킨 이 작가에게 나는 내 스스로에게 허무감을 느끼는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자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