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비건이라는 식습관을 매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있었다. 왜냐하면, 가장먼저 살아가는데 여러가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할뿐더러,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세계적으로 시위를 하며 채식을 하지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한다. 나는 먹는 행복이 인생에서 누리는 행복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비건의 태도는 눈에 곱게 들어올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놓친 부분 때문에 비건을 너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지 돌아보기 위하여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를 읽어 나의 관념을 다시 재검토 하기로 했다. 책의 내용은 가축을 위한 먹이의 효율성, 인체에 끼치는 영향 및 동물 학대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비건을 옹호한다. 난 위 같은 이유로 육식을 안하는 것은 병이난 팔을 치료하지않고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위의 이유로 육식을 배제하는 것은 아주 극단적인 처방이며 실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문제를 해결가능하다. 그들은 학대당하는 가축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육식을 거부한다. 그러면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학대당하는 가축으로부터 얻어낸 육류를 섭취하면 된다. 들푸른 초원에서 풀만 먹고 자란 육류는 너무 비싸다. 그렇기에 현재 세포배양을 통해 육류를 얻어내는 인조육에 대한 기술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그렇게 타협점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육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가지지 못하고 자신이 할 말만 하는 무지한 사람들일 뿐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