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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2(이호)

  • 조회수 103
  • 작성자 이다헌
  • 작성일 2020-01-02
  • 년도 2018년입학
  • 구분 공통교과
이 책은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1을 이은 책이다. 앞선 책에서는 1947년까지의 상황을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1947년 이후부터 6.25전쟁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이승만의 반공투쟁과 미국의 대립을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승만이 친미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이승만은 계속해서 미국과 싸웠다. 미국에 있을 때도 미국의 정부 관료들과 다투었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하지와 계속해서 싸웠다. 당시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관료와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하게 한국의 정부 수립을 요구한 이승만의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br>1946년부터 공산당에 대해 극심한 비난을 퍼붓던 이승만은 미국 입장에서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였다.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합의하며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었으나 미국은 이를 계속 반대하는 이승만이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한국의 통치를 담당하던 하지는 이승만의 라디오 방송 원고를 사전 검열하여 소련에 대한 비난을 삭제하기 시작했고 이승만과 하지의 대결은 점차 치열해졌다. 이승만은 1646년 4월 15일부터 전국을 돌며 반탁과 반공에 대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1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 후 전라도 정읍 유세에서 단정론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이승만은 유명한 발언을 한다.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 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이 발언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남한 지역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주요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고, 미군정도 그를 비판했다. 이승만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졌다. 일부 시각에서는 이승만이 통일 정부 대통령이 못 될 바에야 남한의 대통령이라도 되기 위해 단정론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이승만이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정치 생명이 끝날 위험을 무릅쓰고 그 발언을 했을까? 권력은 정치적 고립에서는 창출되지 못한다는 상식에서 벗어난 시각이다. 이승만은 단정론을 주장하면서 미국은 대한민국을 유럽에서의 영토협상에서 소련에게 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미국을 격렬히 비난했다. <br>이승만은 국내에서 하지에게 아무리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여 봤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1946년 말 미국으로 떠났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하지의 좌우합작정부를 구성하려는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는 국무부에 건의서를 제출하였고, 뉴욕타임즈를 통해 “한국은 내란의 위기 직전에 있다.”, “하지는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기려고 한다.”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공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소련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처음에 이승만을 무시했다. 미국의 정책은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협력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br>그러나 그리스와 터키가 소련의 팽창 정책으로 인해 공산화될 위기에 처하자 트루먼은 소련을 주적으로 변경하고 ‘트루먼 독트린’이라는 제목으로 1947년 3.12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다. 이는 곧 공산주의와의 대결 선언이었다. 트루먼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창솔하여 서유럽과 미국의 집단 안보를 강화하고, 마셜 플랜으로 유럽의 전후 복구를 도왔다. 또, 일본과 독일을 민주화하여 이 두 국가가 서방 세계 편에 서도록 유도하였다. 트루먼 독트린 이후 미국은 좌우합작과 소련과의 합의에 매달리는 정책을 포기한다. 이에 따라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의 입지가 강화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유럽에 들어가는 미국의 원조량이 늘어남에 따라 남한에 주둔한 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다. 1947년 11월 4일, 유엔 총회는 독립 정부 수립을 위해 한반도에서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들의 신탁 통치는 무효가 되었다. 유엔의 본래 목적은 남한과 북한에 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었으나 이미 정권이 수립되어있던 북한은 유엔 위원단의 방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남한에서 1948년 5월 10일 역사상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5월 31일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br> 한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선언했던 그 어느 국가보다 현재 잘 사는 국가가 된 것은 아마도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정부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강대국에게 맞서서 당당하게 우리의 권리를 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승만이 있었다. 이승만은 그런 과정에서 적이 많았다.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인해 이승만의 업적은 전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대로 교육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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