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45년 광복 전후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가 건국된 것은 하나님이 도움이 있기에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의 이야기를 부각시킨다. 이 때문에 종교적 가치관으로 역사를 왜곡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저자는 역사학자로 객관적인 사실을 먼저 언급한 뒤,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으므로 역사 왜곡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 책을 통해 광복 전후, 미국과 소련이 왜 한국에 주둔하여 민족 분단의 역사가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br> 8월 13일 청진까지 진격한 소련군과는 반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960km떨어진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었다. 소련에게 한반도를 빼앗길 것을 우려하여 11일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중령은 38선 북쪽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소련이 담당하고, 38선 남쪽은 미국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담당하자는 내용의 38도선 분할점령안을 상부에 보고하고 트루먼 대통령은 ‘일반 명령 1호’라고 명명한 후 맥아더에게 지시한다. 이 제안을 소련은 반대 없이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중대한 이념대립이 시작되게 되었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의 군대는 “붉은 군대와 연합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하였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신조선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뿐이다.”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의 성명서에만 불과했다. 당시 혁명과 숙청, 세계 대전으로 말미암아 피폐한 대로 피폐해진 형편이었던 소련은 식량 보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소련군은 세계대전을 통해 획득한 모든 점령지에서 약탈을 일삼았는데,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북한의 자원을 강탈했고, 당시 38선 이남 지역이었던 개성을 점령하여 인삼과 은행에 보관된 현금을 모두 가져갔다. 또 이후, 8월 24일부터 25일 남북 간 연결 철도였던 경원선과 경의선을 차단했고, 38선 지역에 경비부대를 배치하여 남북 간 도로통행을 통제했다. 9월 6일에는 38선 이남 지역과의 전화, 전보 통신을 차단하고 우편물의 교환을 금지했다. 심지어 12월에는 38선을 지키는 경계 초소 병력을 증강하여 남북 간의 통행 통제를 강화했다. 업무 분담선이었던 38선을 민족 분단선으로 만든 것이다.
<br> 철저하게 북한을 통제했던 소련과 달리 미국은 남한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칼 버거 기자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미국 정부의 구체적이고 자세한 준비 없이 태평양 지구의 미군에 의하여 점령된 유일한 주요 지역이다.” 구체적인 준비 없이 남한을 떠맡은 자는 존 리드 하지(John Reed Hodge) 장군이었다. 정치에는 일가견이 부족한 미국 전쟁영웅을 한국을 통솔하도록 파견한 미국의 태도에서 남한에 대한 무관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미군 병사는 상당 수 있었지만 미군 장교 중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한국말도 모르는 외국인이 우리의 생사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로버트 올리버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이곳 군정 당국자들 전체를 통하여 들리는 말은 ‘한국은 우선순위 계통의 맨 끝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인원 배치, 보급품, 정책 조정 등 모든 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일본이나 군정 당국자들을 위해 일단 도쿄에서 알맹이를 빼고 겨우 남은 찌꺼기나 다른 데서 필요치 않은 것이 한국까지 온다.” 미국은 남한을 유럽에서 소련, 프랑스, 영국과의 협상에서 대안 카드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은 체계적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여러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남한은 미국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br> 이 책은 지금 보수파와 진보파가 1950년 이후부터 계속해서 싸우는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공산화 될 뻔 하였던 당시 역사적 사실과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해 주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던 것은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