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제에 관심이 많아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이 책을 사서 읽기도 하였다. 이 책은 이전에 알고 있었던 백제의 대외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백제는 해상강국으로 고구려나 신라에게 고립이 되지 않고 요서와 규슈에 진출하여 점령했다고 알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근초고왕 때 요서와 규슈에 진출했다고 하여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근초고왕 이전에는 제대로 된 중국과 일본에 대한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기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외국의 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적는 중국 역사서에도 백제와 교류 내용이 근초고왕 이후부터 나와 있어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백제는 근초고왕 때 동진과 교류를 시작했고 일본과 정식적인 교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근초고왕 이후 고구려의 급성장으로 원래 중국으로 가던 항로가 막히게 되었다. 고구려에 의해 교류를 못하게 되어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472년 북위에 교서를 보내 고구려 때문에 백제가 못살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당항성을 중심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웅진-사비시기 중국과 활발히 교류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사서에 백제에 기록이 많이 나오게 되었고 다양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기분 나쁠 이야기들이 나온다. 조공과 인질이다. 조공은 계속해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조선시대 조공이나 백제의 조공 역시 같은 역할을 가진다. 새로운 선진 문화를 수용하고 대외관계에서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전혀 굴욕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삼국시대에는 중국은 남북조시대로 중국과 한국 내부에서 서로 서로 견제를 했기 때문에 중국과 백제의 발전을 위해 연대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조공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질이 있는데 백제의 아신왕이 태자 전지를 일본에 인질로 보냈다. 그 대가로 군대를 파병시켜 주었다. 여기에서 인질이 일본에 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전지가 위험에 빠졌을 때도 열심히 도와주었다. 이 때 인질은 외교 카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백제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다양한 백제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