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의 각 장은 이순신의 자기 서사라는 구조 안에서 서로 연속되는 동시에 현저한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로 단아한 소품 고백록처럼 읽힌다. 서로 다른 제목이 달린 장마다 이순신은 그의 생애의 서로 다른 시간과 연결된 그의 지각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반성적인 자기의식이 수정水晶처럼 응결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서술 문체는 간결성, 직핍함, 통렬함 쪽에 기울어 있다. 그가 서술된 이야기 속에서 좀처럼 울지 않듯이 그가 하는 이야기 서술은 감정 표현을 절제한다. 그의 마음속에서 격랑을 이루고 있을 근심과 회한과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에 그는 그의 몸으로 느낀 세계의 인상을 기록한다. 지난 20년간 문학동네를 통해 독자와 만나온 빛나는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이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제14권 『칼의 노래』. 21세기 한국문학의 정전을 완성하고자 구성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열네 번째 작품은 한국문학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작가 김훈의 역사소설로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고자 하는 무인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조선의 명장 이순신이 일인칭 서술자로 등장해 죽기를 각오하고 전장으로 나아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임금의 명을 거부했다는 죄로 옥고를 치르다가 풀려나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된 정유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적탄을 맞아 전사한 이듬해 11월까지의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저자 특유의 남성적 문체로 이순신의 고독하고 불안한 내면을 예리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20세기 이후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만을 선정 출판하는 ‘전세계 문학총서’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칼의 노래』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한반도의 역사 전체 혹은 호모사피엔스의 역사 전체를 재구성하고 재배열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명체로서의 개별적인 몸짓과 목소리, 그리고 언어 등을 원초적으로 억압당하고 장치들의 지배를 일방적으로 받는 순종하는 신체들로 살아왔다는 점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이 21세기를 자신의 세기로 만든, 그리고 한국문학 전체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라보았던 김훈 소설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