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의 말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기본적인 논리력과 쉽게 알 수 있는 몇 가지 수치만 가지고도 가능하다. 몇 가지 수치와 간단한 계산으로 근삿값을 구하는 것을 페르미 추정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페르미 추정을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한 21가지 예시를 들어 페르미 추정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독자가 터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독자들이 시험 삼아 직접 해 볼 수 있는 예시들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어휘력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단어를 아는지 알고 싶다면 사전을 하나 가져와서 그 사전 속의 단어 하나하나마다 아는지 모르는지를 체크하면 되나. 그러나 사전 속의 단어가 많게는 10만 개까지 되는데, 그 단어들을 모두 확인하면 정확히 내가 몇 개의 단어를 아는지 알 수는 있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내가 정확하게 몇 개의 단어를 아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근사치라도 상관이 없으므로 페르미 추정을 응용해 보자. 먼저 사전을 펴서 각 페이지마다 맨 처음 나오는 단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체크한다. 그 단어를 안다면 그 페이지의 모든 단어를 아는 것으로 간주하고, 모르면 그 페이지의 모든 단어를 모르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제 아무데나 한 페이지를 펴서 그 페이지에 몇 개의 단어가 나와 있는지 센다. 그 두 개를 곱하면 자신이 대충 몇 개의 단어를 아는지 알 수 있다. <br>또한 페르미 추정을 통해 전문가들의 주장의 타당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요즘 지구 온난화 때문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수십 년 안에 지구상의 많은 저지대들이 바다에 잠길 것이라고 환경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과연 환경 전문가들의 말은 타당할까? 먼저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저자는 물이 든 컵에 얼음을 띄우는 간단한 실험만으로도 이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실제로 컵에 띄운 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컵 속의 물의 높이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미 얼음이 차지하고 있던 부피는 얼음이 물로 바뀐다고 해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남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진다는 주장은 옳다. 북극의 빙하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지만, 남극은 대륙이기 때문에 남극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은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상당히 근사적인 수치만 가지고도 해수면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상승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환경 전문가들이 예측한 수십 년보다 훨씬 느린 약 500년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br>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실생활에 별 도움은 안 될 것 같지만 재미삼아 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페르미 추정 문제의 활용법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우리 집의 무게를 구하는 방법을 가지고 실제로 자기 집의 무게를 쟀고, 서양에서 유명한 말인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통계적으로 정말 옳은 말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br>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냥 재미삼아 볼 수 있는 내용들에 불과하다. 우리가 우리 집의 무게를 재거나 서울에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 정도 있을지 안다고 한들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의 문제를 몇 개의 변수를 가진 수식으로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고,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켜 준다. 따지고 보면 일부 특수한 직업을 갖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삼각함수와 미적분은커녕 집합 기호 하나 쓸 일이 없음에도 우리가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수학이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기 때문이 아닌가. 또한 이렇게 길러진 추론 능력은 최종적으로 우리가 전문가에게 속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 그들의 주장을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그 내용 자체보다는 그런 능력을 기르게 해 준다는 의미에서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