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을 거닐다가 제목이 재미난 책을 발견하였다. 조선의 관청 기행인 것이다. 조선의 관청에 대해서 또 조선이 어떻게 왕조를 500여년 운영하고 통치했는지가 궁금하여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또한 나는 동아리를 운영하는 입장으로 이를 보고 동아리 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있을까하여 한번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필자는 왕의 관청이 모인 궁궐부터 조선의 행정부 육조, 통치의 손발이 된 지방 관청까지 조선의 국가 경영 시스템을 소개한다고 한다. 그는 시중에서 조선 시대의 관청을 안내하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며 조선사 이해에 필수적인 관청 안내서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것은 조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큰 불편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한다.
<br>나는 동아리에 관련된 관청이나 관련 부서를 찾아보다가 나의 동아리 직책인 총무와 관련된 예산을 보는 호조에 대해 읽어보았다. 호조는 우선 하는 일이 기획재정부+국세청이라고 한다. 호조는 인구 조사, 세금, 나라 살림살이와 관련된 일을 맡은 관청으로 고려 성종 시대에는 호부라 불리고 한때 판도사로 위상이 떨어졌다가 공양왕 대인 1389년 호조로 굳어졌다. 호는 판적사, 회계사, 경비사 세 곳으로 나뉘어 업무를 보았다. 그중에서 ‘호조의 재정을 능가한 균역청’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균역청은 처음 듣게 되더라도 한국사 시간에 배운 균역법에 관한 부서 같았다. 균역청은 선혜청이라는 기관에 예속된 산하 관청이었지만 돈에 관한 업무를 보는 호조보다 재정이 능가한 기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균역청은 균역법 실시에 따라 관련 업무를 보는 관청이었다. 여기서 균역법이란 백성의 부담을 대폭 줄여주도록 일률적으로 해마다 포1필로 정하고 이에 따른 손해는 어업과 소금 생산에 부과하는 어염세를 보충하고 은여결세 등으로 보충했다. 균역법에 따라 거둬들인 세금을 관리하던 곳이 균역청인데 이 균역청의 1년 수입을 돈으로 환산하면 60여 만 냥에 이르렀는데 이는 호조의 1년 예산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선헤청의 산하기관의 수입이 호조의 예산을 웃돈다는 것은 균역청의 얼마나 주요한 관청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글을 보고 나는 동아리 예산을 이리저리 분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