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 멕시코로 이민간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해산된 군인, 몰락한 양반과 왕족, 무당, 신부 등 조선시대 말에 나타난 다양한 계층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이 흥미롭고 독특하게 느껴졌다. 다른 인물들이 각 계층을 대변하는 느낌이 있는 반면 이연수라는 인물은 왕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인물이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환풍기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구조적 측면 말고도 서술면에서도 인상 깊은 점이 있었다. '멕시코로 가는 배 안'이라는 닫힌 공간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부딪히며 신분질서나 유교적 윤리가 없어져가는 모습을 묘사한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또 이연수라는 인물을 묘사할 때 시각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노루피 냄새'라는 후각적 표현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으로 인물을 묘사한 것을 본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후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윤활유의 역할로 사용하고 대부분의 내용을 작가의 상상으로 채운 것을 보며 역사적 사건에 얽매이지 않은 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