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쟁 실록」이라는 책을 보면서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큰 두 차례의 전쟁 이외에는 전쟁을 하지 않았고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전투력이 낮다고 생각되어 어떤 전쟁들을 했을지 궁금해서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고려 말부터 많이 쳐들어온 왜구와의 토벌 전쟁부터 조선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 후 세종시절의 조선의 여진 정벌이 시작되고 그 다음에 삼포왜란에 대해 소개가 나온다. 그 후 유명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서양세력이 쳐들어오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 중에서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인 삼포왜란에 대해 집중적으로 책을 읽어보았다.
<br>1419년 대마도 정벌이후 1426년 대마도주의 요청에 따라 내이포, 부산포, 염포의 세 개의 항구를 개항했고 1443년 구체적인 조약을 체결해 계해약조하고 했다. 계해약조의 핵심은 무역선은 50척으로 한정하고 세견선의 체류기간은 20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해약조를 체결할 때 조선은 왜인에게 몇 가지 특혜를 주었는데 왜인이 개항장에 도착한 이후부터 본국으로 귀환할 때까지의 귀환할 때까지의 비용을 조선 측에서 부담했다. 여기에 드는 접대비와 세역 미두가 너무 많아 조선 조정에 큰 부담을 안겼다. 당시 왜인은 무역이 끝나면 20일 이내에 돌아가야 했으나 항거왜인이라고 하여 거류한 지 오래된 자들은 잔류를 허락했다. 또한 중종 때에는 1천명이 넘는 거류 왜인이 있었고 대마도주는 거류 왜인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1494년 조선은 거류 왜인에게 세금을 매기기로 했지만 실제로 징수하지 않고 왜인은 이를 악용해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왜관의 경계를 넘어 상업 행위를 하는 일도 허다하고 조선인을 폭행과 납치를 했으며 심지어 조선 관아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특히 연산군 시기를 지나며 왜인의 불법 행위는 극에 달했다. 중종 반정이후 이를 다시 규제하려 하자 대마도의 도주가 이익이 줄어들며 노골적으로 불평하며 조선 조정에 그 내용을 전달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왜인들은 불만을 품고 삼포의 조선관아와 성을 공격해 장악을 하였다. 후에 잘 수습하여 왜란을 막았지만 평소에 대비를 하지 않았으니 이 점이 왜란의 시작인 것 같다. 조선시대 사관이 쓴 말에 따르면 ‘경솔히 화친을 허락하여 화근의 씨앗을 만들어놓았다. 대마도에 있는 왜노가 본래 이것을 가지고 통교하는 근거로 삼자는 것인데 조정에서 경솔히 허락한 것이다.’ 이 말이 나는 공감이 갔다. 어떠한 일이라도 평소에 의심을 하며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