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국사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특히나 고려왕조에 대해 흥미롭게 느끼고 있었고 책제목에 나와 있듯이 심리학과 관련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궁금하여서 한번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지은 필자는 심리학이라는 현대 이론으로 고려사를 들여다보았다. 후삼국 시대의 가장 뛰어난 궁예는 자기 안의 그림자를 다스리지 못해 무너졌고 고려 왕조에서 내면의 그림자가 가장 짙었던 현종은 그림자를 잘 다스리고 활용해 성군이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혹은 작은지가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그 그림자를 수용하고 받아들여 어떻게 삶의 동력으로 삼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br>이 책의 목차에서 ‘주몽과 왕건을 흠모하다’라는 부분은 두 인물이 관계가 없지만 같이 나온 것이 궁금해서 한번 주목해보았다. 궁예와 같은 성장 배경을 지닌 아이는 따스한 보살핌에 대한 욕망이 전이되어 ‘가족 로망스’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신경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발견한 특이한 상상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어머니를 구타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평생 자신이 본받고 존경할 만한 남성상을 찾아 헤맸다는 것이다. 궁예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을 흠모했고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임했지만 철원에 태봉국을 세우고 898년에는 송악으로 도읍으로 세우고 904년에는 마진으로 국호를 바꾸고 도읍을 다시 철원으로 옮겼고 911년은 다시 태봉으로 국호를 바꿨다고 한다. 이처럼 국호와 수도를 자주 바꾼 것도 궁예의 불안 심리를 보여준다. 궁예는 많은 신하 중에서 정작 누구 하나 마음 놓고 믿지 못했다. 신하들과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더욱 무자비하게 권력을 행사했고, 신하들 또한 그를 두려워만 할 뿐 진심으로 믿고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왕건은 주변의 가신들을 믿고 신하들은 자발적으로 충성하며 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경결’이라는 거울 이야기를 민가네 유포되어 민심이 왕건으로 쏠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집단 심리가 형성되자 민중은 자연스럽게 왕건을 대망하게 된다. 만약 궁예가 조금이라도 측근을 다독이고 끌어안았다면 왕건의 사회심리 조작술이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의심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의 말을 할 때는 의심보다는 더욱 다독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하였다.